못난이 친환경 농산물을 배송합니다!
Farm to table
최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매일 섭취하는 식단과 질병과의 상관 관계를 인지하면서, 건강 식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복잡한 식품 유통 과정에 생기는 경제적인 불균형, 친환경적이지 못한 농사 및 축산 기법들 등 현 푸드 시스템에 대한 변혁의 목소리도 같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중 하나가 식품 유통 과정에서 생기는 불필요하게 많은 낭비와 환경 파괴인데, 이와 관련되 이슈 해결을 위해 소비자와 생산자를 직접 연결하는 D2C (direct to customers) 비즈니스 플랫폼들이 생겨나고 있지요.
“먹는 사람과 기르는 사람이 연결되는 것이 순환경제예요. 당신이 직접 텃밭을 돌보거나 농사짓는 농부를 안다면 상표는 필요 없어요. 유명한 회사 이름이 필요 없죠. 당신이 생산자와 맺고 있거나, 당신이 당신 농사와 맺고 있는 그 관계가 브랜드입니다.”
경향신문 반다나 시바 인터뷰 기사 발췌 -
과학자이자 농부이며 풀뿌리 운동가인 반다나 시바의 인터뷰 중에서 제가 인상깊게 읽은 기사 구절입니다. 클릭 하나만으로 신선한 야채와 과일이 집 앞으로 배송되는 세상이지만, MZ세대를 중심으로 사람들은 기술을 이용한 편리함보다는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한 생명체로써 환경과 나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신선 제품 섭취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로컬 팜에서 재배된 야채와 과일들을 농부 시장에서 구매하거나, 농산물 직판장이나 마르쉐를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농부들이 큐레이션하는 농산물 꾸러미를 인터넷에서 구매하기도 합니다. 인터넷과 다양한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농부님들과 직접적으로 소비자들을 만날 수도 있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건강한 농산물 소비를 도와주는 스타트업들
미국은 몇몇 스타트업 중심으로 기존 푸드 시스템의 변혁을 외치면서, 새로운 개념의 신선 식품 배송 서비스를 런칭하며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스타트업이 Imperfect food, Misfit market, Hungry Harvest인데, 이 스타트업들은 과거 여러 가지 이유로 푸드 시스템안에서 유통되지 못했던 친환경 농산물들을 더 경쟁력이 있는 가격으로 배송 정기 서비스를 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습니다.
[ IMPERFECT FOODS, MISFIT MARKET, HUNGRY HARVEST 웹사이트]
이 비즈니스 모델은 기본적으로 미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40-50%는 그냥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 (Food Waste)” 이슈를 타겟했는데, 이 음식물 쓰레기들은 크기가 너무 크거나 또는 작거나, 유통기한이 임박했거나, 멍들거나 모양이 우스꽝스럽거나, 포장이 마트 진열에 이쁘지 않아 상품성이 없어 버려지는 농수산물들을 의미합니다. 모양만 상업적 규격에 맞지 않을 뿐이지, 맛과 영양은 똑같은 이들을 모아 더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정기적으로 배송해주는 것이지요. 또한 친환경 박스와 포장 방법으로 지구에게 더 건강한 배송 서비스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세 기업 모두 지속적인 기업가치 창출과 고객 확보로 급성장하며 ‘제2 농산물 시장 (food secondary market)’을 형성해 나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어글리어스 (Uglyus)’
미국의 못생긴 농산물 정기 배송 서비스를 2020년에 처음 알고 막연히 우리나라에도 참 필요한 서비스겠다라고 생각했었어요. 친환경적이지도 않지만 모양만 예쁘고 보기 좋은 농수산물들이 더 많은 프리미엄을 가지고 마트와 백화점 가판대에 놓이는 동안, 힘들게 유기농을 고수하시며 못난이 농산물들을 키워내시는 농부님들께는 소비자와 만날 기회들이 그리 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한국의 못난이 채소 정기 배송 서비스 ‘어글리어스’]
그런데 반갑게도 우리나라도 올해 못생긴 농산물 정기 배송 서비스인 ‘어글리어스(Uglyus)’가 국내에 서비스를 런칭하였습니다. 앞서 소개드렸던 미국의 서비스들과 유사하게, 같은 땅에서 건강하게 자랐지만 시장의 기준에 맞지 않은 모양과 크기, 또는 과잉 생산으로 매해 전체 생산량의 1/3이 폐기되는 이슈를 해결하고자 하는 서비스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친환경/유기 농산물 7-9종이 다양하게 소량씩 들어가 있는 채소박스를 2주에 1번 배송해줍니다. 한번 배송에 1만 7천원을 지불해야하며 배송비는 별도이며 2번 이상의 정기 배송 빈도를 선택하면 배송비가 없습니다. 정해진 날짜에 배송이 되며, 알러지가 있거나 개인 건강 이유로 먹지 않는 채소들은 따로 연락을 하면 조정 가능합니다. 채소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된 포장재는 국내 생분해성 수지 제품에 대한 인증을 받은 제품으로 매립 또는 소각 시 유해 물질을 배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제가 6월에 구입한 어글리어스 박스에는 적양배추, 당근, 방울토마토, 양파, 파프리카, 감자, 오이고추, 오이 등 총 8 종류의 채소가 무농약 농산물로 배송 되었습니다. 대부분 판로가 부족했거나 크기와 모양의 문제로 어글리어스에서 구입된 채소들이었는데, 대부분 육안으로 확인했을 때 조금 짤막한 당근을 제외하고는 다 귀엽고 예뻐보였답니다.
[어글리어스 6월 채소 박스 내용들]
기존 유기농 마트 가격과 비교해도 확실히 가격 경쟁력이 있었고, 신선도 측면에서도 전혀 문제가 없을만큼 싱싱했어요. 더 구매하고 싶은 농산물에 대한 추가 오더와 프로젝트성 과일 판매까지 문자로 다양한 구매 기회를 가능하게 하는 점들도 인상 깊었습니다. 채식을 중심으로 하는 저희 가족 식단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야채가 종류의 스펙트럼이 넓지 않아서 단조로운 면이 있었고, 채소별 구매 수량 선택이 불가능하여 개인의 취향 반영이 좀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어글리어스에서 보내온 농산물로 만든 나의 요리들]
정기적인 채소 박스의 수령을 통해 평소 잘 먹어보지 않던 채소도 섭취할 수 있으며, 동봉된 레시피 페이퍼와 함께 새로운 요리를 해먹을 수 있는 재미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소비가 버려지는 농산물의 낭비를 막고, 더 나은 푸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 함께 했다는 프라이드가 가장 큰 이점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