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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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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썸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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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당장 집에서 요리를 해야 하는 이유

누군가 저에게 ‘건강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가장 큰 기준의 잣대로 “내가 직접 만든 집밥인가? 아니면 기업이나 남이 해준 음식인가?” 를 먼저 이야기합니다. 집밥은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도 현대 사회에서는 실행하기 힘든 관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에서 하루 세끼 정성들여 가족들을 위해서 요리를 하고 다같이 앉아서 식사를 하고 먹은 그릇을 치우는 일은 상당히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입니다. 제가 집밥을 해먹는다고 하면 대부분 반응은 이렇습니다. “ 너는 시간이 많은가봐? 난 도저히 집에서 밥할 시간이 안돼. 너무 바빠서 배달을 시키거나 외식을 하지 않을수가 없어.”

우리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 중에 집밥은 우선순위가 많이 밀려나 있습니다. 다른 많은 일들에 밀리고 밀려 결국 외식, 가공식품, 배달음식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 이유는 집밥을 우리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해먹어야 하는 중요한 행위가 아니라, 충분히 아웃소싱하여 해결할 수 있는 ‘집안일(Drudgery)’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집밥 홀대의 역사

집밥은 어쩌다 이렇게 홀대를 받게 되었을까요? 1970년 치킨 패스트푸드 브랜드인 KFC는 그들의 후라이드 치킨 버켓 (Fried Chicken Bucket)을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걸어 마케팅을 했습니다.

“ 여성의 자유 (Woman Liberation)”

1970년 집에 머물던 여성들이 사회로 나가서 활동을 하기 시작한 시기이며, KFC와 같은 대형 패스트 푸드 업체나 푸드 회사들은 여성은 밖에서 더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하여 허드렛일인 ‘집밥’을 자신에게 일임하라고 시장에 어필했지요.

이렇게 집밥의 아웃소싱은 여성의 자유를 상징하면서 집밥의 격은 추락하고 소비자들은 ‘편리함’에 더 가치를 두면서 집밥을 해먹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을 우리는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푸드 회사들이 현대 푸드 체인을 하나씩 침투해가며 우리의 식생활과 식문화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미국인들의 46%는 혼자 식사를 간단히 때우는 일이 많아졌으며, 집밥에서 식구들이 같이 식사를 하는 비중은 현저히 감소하게 되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식사를 준비하는데 평균 27분, 식사를 다 먹고 치우는데 4분이 걸린다고 합니다. 이는 요리를 해보신 분들이라면 홀푸드로 요리를 할 수 없는 짧은 시간이라는 것을 다 알지요. 즉 많은 배달 음식이나 가공식품과 일회용기에 담은 레토르트 식품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조사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밥의 가치

저는 집밥은 아웃소싱하여 편리함을 추구할 수 있는 허드렛일 (Drudgery)중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고, 설거지는 식기세척기가 해주고, 청소는 청소기가 해줄 수 있어도 집밥을 하는 요리의 행위는 그 어떤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믿어요.

첫번째로는 우리가 우리 몸에 넣은 식재료를 선택해서 먹을 수 있다는 ‘재료의 주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빅푸드 컴퍼니들에 의해 장악되고 수많은 마케팅에 기형적으로 변해버린 푸드시스템에서 나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직접 고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푸드 컴퍼니들이 매우 자주 사용하는 보존제, 유화제, 색소, 화학첨가제 등을 집밥할 때 쓰지 않아요. 우리가 집밥을 할 때 쓰는 재료와 푸드 컴퍼니들이 쓰는 재료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두번째로는 요리는 창조의 예술 활동입니다. 단순히 반복적인 집안일이 아니에요. 저는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가끔 레시피를 개발할 때에는 그림의 영감을 얻을 때와 비슷하게 뇌가 자극된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습니다. 오랜 기간동안 수많은 음식의 레시피가 개발되었지만 매일 새로운 레시피가 나오는 이유도 음악, 미술과 같이 요리도 창조의 영역이기 때문이지요. 요리는 지겹고 반복적인 행위가 아니라 신나고 에너지가 넘치는 예술 활동입니다.

세번째로 집밥은 우리 가족 멤버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고 가족으로서 유대감을 증진시켜줍니다. 갈수록 테이블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식사를 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혼자 휴대폰을 보며 먹거나 이동 중에 식사를 하는 문화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집밥을 하게된다면 한 테이블에 가족들을 모으고 대화를 하게 만드는 마법이 일어나지요. 가족 생활 중에 같이 식사를 즐기는 일 이외 같이 모여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일은 드물거든요.

마지막으로 우리의 건강을 사수할 수 있습니다. 유명해서 너무 많이 들은 말이지만 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말이 있어요. 저는 덧붙여서 You are what you cook 이라는 말도 자주 한답니다. 우리가 건강한 재료를 직접 고르고 안전한 조리도구에 안전한 조리법으로 가족의 체질에 맞는 요리를 하는 것이야 말로 평생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도 안전한 방법입니다.

빅푸드 컴퍼니들이 말하는 것처럼 집밥을 많이 해먹자는 것은 일하는 여성들이 다시 부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남자든 여자든, 남편이든 아내든 우리 모두 부엌으로 들어가 시간을 좀더 보내야한다는 뜻입니다.

나에게 집밥이란

저는 불혹의 나이를 넘었고 아이를 키운지 8년이 넘었지만, 제가 가족들의 식사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엄마라는 사실이 아직도 놀라울 때가 있습니다. 저는 어떤 엄마일까요?

제가 기억력은 형편없지만, 엄마 냄새, 엄마 숨소리, 엄마의 느낌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그 어디에서도 다시 찾을 수 없는 독보적인 향과 느낌.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 칙칙~” 압력 밥솥에서 시끄럽게 내지르는 밥 냄새입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엄마의 뒷모습으로 또각 또각 도마에 칼질하는 소리, 찌개가 보글 보글 끓는 소리, 달그락 달그락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

이러한 소리들이 집 안을 가득채우면서 무슨 오케스트라 음악인 마냥 집 안을 장악하고는 했습니다. 엄마가 찢어주는 김치는 새콤달콤했고, 구운 고등어를 발라서 나의 찬물에 말은 밥 위에 손으로 올려주시면 세상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었습니다.

집 밥이 만들어내는 그 소리에, 그 느낌에, 그 냄새에 나는 그리고 우리 남매들은 안정을 찾았고, 그 속에서 가족들은 커갔지요. 우리 할머니는 가끔 “ 집에서는 밥 냄새가 나야해. 사람만 밥을 먹고 사는게 아니야. 이 밥냄새는 집안 곳곳에 있는 모든 것들이 먹고 마시는 거야.” 라고 하셨습니다. 이제서야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더라구요.

내가 가족에게 선사하는 밥은 어떤 의미일까. 아이는 내가 하루 3번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며 요리하는 내 모습을 어떻게 바라볼까.

마음이 힘들거나 속상할 때, 내가 차려주는 밥은 그들에게 어떤 위로가 될까. 내가 하는 요리들이 뿜어대는 냄새들은 가족들의 마음과 우리집을 어떻게 채워주고 있을까. 아이가 공부할 때 앞에 놓아주는 내가 만든 간식들은 아이에게 어떤 휴식을 줄까.

내가 ‘끼니를 때우다’라는 말을 싫어하는 이유도, 배달 음식을 자주 먹는 것을 꺼리는 이유도, 가족의 건강을 고려해서 식재료를 고민하는 이유도, 담음새를 최대한 예쁘게 내어 대접하고 싶은 마음도 결국 내가 매일 매일 하는 집밥은 단순히 영양소를 공급해주는 먹거리의 의미를 넘어서, 가족들에게 매일 매일 사랑한다고 말하는 나의 소통 창구이며, 가족들을 유대감 있게 묶어주는 팀 빌딩의 기회이며, 내가 상상 속에 재현해내고 싶은 맛을 탄생 시키는 예술의 행위이며, 가족들이 속상할 때는 치유가 될 수 있는, 기쁠 때는 기쁨의 희열을 증폭시켜주는 나에게 대단한 중요한 일이자, 눈물나게 감사한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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